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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5, 2010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표명수 | 독서회장

“‘그리움’이 아닐까요?”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그림이 무어라고 생각하느냐?”는 스승 김홍도의 질문에 신윤복은 이렇게 대답했다. 국민동생(문근영)으로 불리게 만든 그 눈망울을 크게 굴리면서. ‘그리움’이란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그림’과 ‘그리움’의 어원이 같다는 걸 알고 있었나보다. ‘긁다’라는 동사에서 그림, 글, 그리움이라는 명사가 나왔으니. <인간의 굴레에서>서머싯 몸 지음, 송 무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주인공 필립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소년 필립은 그의 삶이 ‘그리움’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알게 될까?
지휘자 금난새 씨는 독일 유학 시절, 고향과 식구에 대한 향수를 달래 준 곡을 만났다고 한다. 프랑스 니스의 여름 아카데미에 참가한 그는 샤갈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 간다. 한 여자아이와 함께 온 부인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러시아인 차이코프스키가 독일사람 괴테를 존경한 나머지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속에 있는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로 시작되는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가곡이다.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아련하고 슬픈 선율에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잔잔하게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필립은 젊고 어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병든 어머니와 함께 한 그 짧은 어린 시절이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몰랐다. 양부모와의 생활이 지겨워 독일에서 언어와 수학을 배우고, 런던에서 회계일도 해 보고, 그것도 따분해서 프랑스 파리로 떠나 미술 공부도 해 본다. 가정은 굴레인가 자유인가.

벼랑에 선 모네 부인과 아들 쟝 (일명 파라솔을 든 
여인), 모네 1875~78,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필립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리 한 쪽을 쓰지 못한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그것에 대해 얘기하거나 하면 얼굴을 붉히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러나 신체 활동의 제약이 정신을 자극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세상을 만나고, 시골 목사의 양아들로 지낸 어린 시절의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갔다. 회계사,  화가, 의사 등등 온갖 일을 해 보면서, 그 방황과 같은 경험들은 필립의 화두에 슬며시 답을 비춰 준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부모의 유산으로 맘껏 공부할 수 있었던 필립이 마냥 부러울 뿐이지만.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집안 형편, 외모, 능력 등등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신체와 정신의 구원을 받기를 원하기에 작품 속 인물에게서 자기 모습을 투영해 본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 <데미안>은 에바 부인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3D 영화의 고전이 될 <아바타>에서는 불구의 몸을 지닌 해병대원 ‘제이크’도 나비(Na'vi)의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나 신체와 정신의 자유를 얻는다. 흥미롭게도 모두 한 여인과의 만남이 이루어 낸 성과다. <인간의 굴레에서>의 필립도 ‘어머니’, ‘백모(양어머니)’, ‘샐리’로 이어지는 여인의 사랑으로 자신이 찾던 인생의 길을 보게 되었다.
 
Julie Reveuse ('Julie Daydreaming'), 
베르트 모리조 1894,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지은이 ‘서머싯 몸’이 얘기했듯이 자서전은 아니고, 자서전적인 성격을 띤 소설이다. 사실과 허구가 마구 뒤섞여 있다. 영국을 비롯한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국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첫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 장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방황, 고뇌, 경험들에 빠져 들어 그와 함께 삶을 향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1915년에 출판된 이 소설이 백년의 세월동안 많은 대중에게 읽히는 이유이다. 필립은 좋지 않은 유년 시절 가족의 기억, 벗어나고픈 답답한 현실, 깨달음에 대한 목마름의 원인이 ‘그리움’임을 알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스스로의 질문에, 미래의 ‘이상’만을 쫓던 자신의 거짓 모습을 던져 버렸다. 그토록 지겹게 느껴졌던 양아버지와 양어머니와의 일상이, 그들의 삶의 모습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진짜 ‘생(生)’이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양부모의 단조롭고 잔잔한 삶의 무늬가 그들이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임을 깨닫는다. 가정은 굴레가 아닌 자유라는 것을.
“나와 결혼해 주겠지, 샐리?”
짐짓 건조하게 던지는 이 한마디로, 다른 누구도 아닌 필립만의 ‘그리움’을 그려가기 시작한다.
일상의 그리움을 그리기 시작한 모든 이들에게 축복의 시를 띄워 본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홀로 모든 기쁨을
저리하고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보누나
아! 나를 사랑하고 아는 님은
저 먼 곳에 있다
몸이 어지럽고
애간장이 타는구나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 아픔을 알리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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