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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5, 2010

세상을 낙서하라


김선욱 | 교선부장



얼마 전 서울에선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세계를 대표한다고 자청하는 경제위기의 주범들이 한국 땅에 모여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다음 회의 일정만 공유한 채 각국으로 돌아갔다. 혹자는 이를 두고 차라리 Skype 다자간 통화로 했어도 될 일을 굳이 돈 들여가며 회의했다고 비꼬기도 하였다.

아무튼 G20 의장국인 대한민국은 세계정상들을 맞이하여 행여나 국격 떨어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코엑스 주변을 마치 계엄령을 선포한 듯 개미새끼 한 마리 맘대로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하였고, 냄새나는 한국 전통음식으로 말미암아 외국 정상들의 예민한 후각이 비위 상하지 않게 G20기간 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였다가 국민들의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코엑스 주변 감나무에 철사로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등의 엽기행각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정부가 이렇게 극단적인 기행을 벌이면서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정한 시기에 대학 강사 박모씨는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정부의 G20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다 연행이 된 사건이 벌어졌다.
<수유너머>라고 하는 학술연구단체에서 활동하는 박모씨는 이후 이 사건을 두고 어느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4대강 공사를 하기 위해서 별로 실용적이지도 않은 자전거 도로를 닦거나 국토를 지면으로 삼아서 거대한 공공미술을 하는 정부가 저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라며 유머를 유머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꼬기도 하였다. 경찰은 이번 낙서 사건의 ‘쥐' 형상을 특정인과 결부시켜 공안 사건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박모씨는 이 사건의 실제 배후는 “이 시대의 무거운 공기"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트위터를 비롯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것은 낙서가 아니라 예술이라며 박모강사를 옹호하였고, 물론 구속영장이 기각되긴 하였지만, 연행당시 박모강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네티즌 청원이 줄을 이었다. 또한 일본의 각종 노동, 시민단체들도 연대의 메세지를 보내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드높인 일대 사건으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로버트 뱅크시


이왕 쥐 그림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쥐 그림 전문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영국에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거리의 예술가. 쉽게 말하면 길거리에 온통 낙서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근데 이 작가의 낙서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미술의 공익적 측면을 획기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로 불린다. 그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자본주의, 권력, 전쟁, 폭력 등에 관한 것인데, 이런 주제들이 보통 무겁고 재미가 없는 데 비해 뱅크시의 작품은 유머와 해학이 넘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주제를 받아들이게 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 또한 가명이며 몰래 와서 낙서를 하고 가는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키슈의 블로그에서 인용>
 
뱅크시의 작품에서는 쥐 그림이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한다.


>> 템스 강가 가로등 받침대에 있는 작품. 
쥐 두 마리가 국회의사당을 향해 포탄 테러를 모의하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뱅크시가 폭력에 대해 비판한 작품 중에 백미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가로막는 긴 장벽에 목숨을 걸고 남긴 일련의 작품들이다. 그는 무장한 이스라엘군의 총구를 온몸으로 받으며 680km에 달하는 이 장벽에 모두 9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UN으로부터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통지를 받기도 했다. 






>>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들어오는 당나귀를 검문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



뱅크시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부르주아의 집에 들어가 장식장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의 주제는 가끔 예술에 대한 공격을 포함한다. 갤러리에 걸린 유명한 작품의 패러디하거나 남몰래 미술관에 잠입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몰래 걸어놓고 나오기도 한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사라지고 소장 가치만 남아버린 현대 예술에 대한 신랄한 공격인 셈이다.
 
초창기 거리에서 벌어지던 뱅크시 작업들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영국정부에서도 이제는 관광지도에 그의 작품 장소를 그려 넣을 만큼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헐리우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그의 작품을 21억에 주고 구입하기도 하였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부조리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벽화와 작품들은 이제 관광명소가 될 만큼 체제 안으로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체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불티나게 팔리듯이... 그러나 초창기 불법이었던 벽화가 뱅크시로 인하여 합법적인 영역으로 열리게 되면서 새로운 저항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다시 말해 자본에 의한 끊임없는 포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탈출구를 만들어 내는 것. 이제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폭로하고 권위에 짓눌린 약자들을 대변하는 수많은 제2, 제3의 뱅크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뱅크시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스스로도 무정부주의자라고 밝히는 뱅크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직관적이고 또 직감적이다. 또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진 않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주로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하는 그의 작품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함께 안겨줄 뿐 아니라, 부조리한 권력과 권위를 마음껏 조롱한다. 이것이야말로 대중과 소통하는 뱅크시만의 ‘불온한 발랄성’ 이 아닐까? 


I LIKE SEOUL

 "참여해 주세요. 당신의 생활이 진정한 예술이란 것을 증명하게 해주세요" 라는 건전한 카피문구로 ‘비공식 불법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며 5세 훈이의 디자인 서울과 맞짱을 떴던 그룹의 이야기이다.

 “서울시 홍포 포스터에 여러분의 의견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겠습니다"

>> 천진한 소녀의 미소 띤 표정과 문구가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는가?
구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지별씨의 아이디어로 광고물에 버블 말풍선을 붙이는 것에서 착안 받은 “아이라이크서울 캠페인”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의견이 담긴 포스터에 서울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넣어 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이트에 접속하여 당신이 생각한 문구를 작성, 제안하면 서울시 어느 버스정류장이나 벽포스터에 당신의 멋진 카피가 새겨진다.
 
이들의 활동이 주목을 받게 되자 ‘디자인서울 총괄본부’ 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신종 낙서 수법을 개발한다. 이른 바 <청소기법>. 양말로 터널의 먼지를 닦아내 그래피티를 하는 ‘무스'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 세제와 칫솔 등을 이용, 문구대로 청소하는 친환경적 기법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지난 쥐20에서 광화문 한복판 이들은 지난 쥐20에서 광화문 한복판에 말풍선을 들고 나타난 적이 있다. 세종대왕 동상 옆에 “제가 웃고 있다고 여러분이 웃게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 “녹슨(색) 성장”이란 말풍선을 들고 나타났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은 적이 있다. 


 
>> 이들이 작업한 결과물이 서울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히치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현재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모아 2번의 전시회를 진행했으며, 앞으로 아이라이크서울 캠페인의 결과물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 출판할 예정이라고 하니 사라진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분들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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