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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5, 2010

쥐가 된 인간

* 이미지 제공 : 네이버 블로거 도빈(monseiurk)


정창식 | 조합원


지금 울산에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주를 훌쩍 넘겨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 노동자의 분신이 있었고,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와 야당 국회의원들이 중재에 나서겠다며 들락거리는 와중에도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위협과 용역 깡패들의 폭력은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1987년 울산에서부터,
삶의 권리를 찾겠다며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현대그룹의 주력사 중 하나였던 현대엔진에서 노동자들이 7월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자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에서도 어용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민주노조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시작된 민주노조의 불씨는 울산지역의 노동자 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전국의 노동자들의 열망으로 순식간에 번져 9,000여개의 노조, 20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우리 현대사의 한 획을 긋게 되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를 만들게 된다.
 
23년이 지난 지금,
임금과 단협의 교섭권을 사측에 일임하고 16년간이나 쟁의가 없는 ‘모범노조’도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따른 특근이나 성과금의 축소를 걱정하는 ‘귀족노조’가 있다. 노동자 대투쟁의 중심에 있던 노조는 그저 역사 속 추억일 뿐일까?
 
‘한국철도공사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87년에 장정일 시인이 쓴 시 한편을 읽고 싶다.



쥐가 된 인간
 
 

아예 잡지 못할 것 같았으면 몽둥이 휘두르지 말 것을
그만큼 정확한 나의 겨냥 피할 수 있었다니
달아난 새앙쥐는 틀림없이 왕이 될 재목이야
어느 날 금단추 자랑하는 근위병 거느리고
눈 밖에 난 반역자를 잡으러 올 테지

황급히 구원의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문명은 통화중만 알릴 뿐
점점 나는 세계와 거리 멀어지고
이제 너는 갇혔다. 상상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그리고 이곳에서는 주사위마저 운명
가르쳐주길 망설인다. 뻔뻔스레 너는
왕에게 불경했고, 그때 이미 죽었으므로

땅 깊은 곳에서 너의 시집은 금지되고
그들의 왕이 자신에게 대적한 인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벌주는가 찬양하며
저녁 쥐들이 춤을 춘다. 장작불 곁에서
처녀쥐의 경쾌한 박자에 밟히며
꿇어앉은 나의 그림자도 춤춘다
그리고 나는 저 쥐를 안다
그는 이 구멍 속에서 제일가는 노래꾼
나는 형이상학적인 그의 고뇌도 안다
가인의 입술은 하나, 그는 무슨 재주로
사형수의 죽음 위로하며 어떻게 형장의 칼
함께 찬양할 수 있는가?

노래가 끝나고 나팔수의 볼이 찢어질 때
누군가 소리쳤다. 잔뜩 공포와 전율에 부풀어져
왕이시여 궁휼히 여기시길! 그날 제가
당신의 척추 잘못 내리친 것처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왕들은 모두 용서할 줄 안다
하여 나는 지금껏 흘려본 일 없는 진한 염분의 눈물로
죽음의 왕 발 씻겨주고

쥐를 찍어내는 주형 속에 들어가, 오늘
만물 영장이 무섭게 짓밟히실 때
불필요한 사색과 지혜는 마구 잘리며
기름진 털은 숭숭  돋아나 또다시 평민인 쥐
네 발로 다니며 하나의 창공, 여덟 개 부엌
그 높은 삶의 문턱을 넘나들겠네

영민하게 째진 눈과 슬픈 꼬리를 달고
어머니 제가 돌아왔답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기습한 굵은 몽둥이로
내려치지 마세요!
놀랍게도 이 왜소한 노래꾼에게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이 생겼답니다. 


장정일. 「쥐가 된 인간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897.


※ 장정일 1962년 대구 달성 출생, 1984년 『언어의 세계』에 「장정간다」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년 김수영 문학상, 「너에게 나를 보낸다」,「내게 거짓말을 해봐」,「장정일의 삼국지」등의 소설과 「서울에서 보낸 3주일」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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