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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5, 2010

사부님께 드리는 편지


북한산에서 단풍을 보며 ‘참 아름답구나’하는 감상에 젖은 지 오래되지 않아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이 한사코 뜰의 낙엽을 쓸어 담아 어디론가 보내더니 이미, 코끝 시린 겨울이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이 겨울, 존경하는 이한웅 풍물패 회장님의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어 가슴까지 시리고 저리게 만드네요. 학창시절에 정말 잠깐 장구 궁채를 만져만 보았다는 이유하나로 풍물패에 가입하여 회장님과 인연을 맺은 지 6, 7년. 그 햇수만큼 사계절에 합당한 이파리와 나뭇가지와 자연의 모습들은 마치 몇 배속으로 빨리 돌아가는 필름의 영상처럼 쉬익~쉭 지나가 버리고 벌써 퇴직이라니요.
그 옛날 ‘장거리의 호랑이 본무’라는 전설과, 이른바 초절정 고수의 장구실력으론 범접하기 어려웠던 첫인상과는 달리 자상하시고 가슴 따듯하신 회장님을 우리는 사부님이라 불렀지요.
   
“한 시간을 알려주면 100시간은 뒤져라 연습해야 되는겨”
 
“6개월을 열심히 연습하면 ‘기닥’이 트고, 1년을 뒤져라 연습하면 ‘끼끼닥’이 되는겨”
 
“느그들 회송 중간에 뭐하냐? 컴퓨터실에서 오락이나 하지 말고 그럴 때 와서 틈틈이 연습하는겨. 옆에 팔노치 봐라. 틈만 나면 와서 연습하잖여. 느그들도 왜 그렇게 안하냐?”
 
사부님의 수많은 독려와 가르침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네요.
사물놀이의 애정과 열정은 정말 대단하셔서 항상 우리들보다 저만큼 앞서가시곤 하셨지요. 사실, 모임을 잡아서 연습할 때면 ‘내가 다른 것은 못해도 장구만은 사부님정도는 쳐야지’하는 생각이 불끈 솟다가도 헤어지고나면 다시 일상에 젖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잘 안되더군요. 정말 많이 속상하셨죠?
  

   사부님 생각나시나요? 청산도에 갔던 거요. 생각하면 지금도 봄 햇살에 일렁이는 보리밭,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 그 돌아가는 돌담길을 서편제 흉내낸다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어깨춤, 추면서 올라갔던 거요. 또 삽시도 수련회는 어땠나요? 해변가에서 사부님 장구가락에 맞추어 다함께 아리랑을 목청껏 불렀던 거요. 석훈이 feel 받아서 밤새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을 흥얼거리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네요. 퇴직하시고도 가끔씩 장구도 가르쳐 주시고, 어디 여행가면 바쁘다 마시고 무조건 꼭 참석하시는 거 잘 아시죠?
 
사부님.
낙엽으로 진 나뭇가지에 초록의 잎들이 다시 돋아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부님께서 보여주신 사물놀이의 열정과 기관사의 자부심은 퇴직하시더라도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른 새벽의 눈밭을 뒷사람을 생각하시어 함부로 내딛지 않은 발자국처럼, 선배님께서 닦아놓으신 그 길을 아무 주저함없이 가겠습니다.
저 청산도 돌담길처럼 따사로운 그 길을 다함께 웃으며 가겠습니다.
사부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박형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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